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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IFE

새벽기도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새벽기도에 가려고 알람을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앞당겨 놓았다. 새벽4시, 살짝 피곤하고 잠이 깨질 않는다. '그래도 가야지!' 의지를 불태우고 일어났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능력이 있었기때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만이 물 위를 걸었다. 왜냐하면 거친 파도가 불어 닥치는 캄캄한 바다 위 조각배에서 바다로 발을 내디딘 사람이 베드로뿐이었기때문이다. 그 첫 발은 예수님의 능력이 아니라 베드로의 의지와 꿈이었다. 베드로가 첫 발을 내딛었을 때, 비로소 예수님의 능력이 베드로에게서 나타난 것처럼, 첫 발은 내가 내디뎌야 한다. 그래서, 힘들지만 일어나야 하고, 힘들지만 가야 한다. 내 인생을 구조조정하기 위한 첫 걸음은 내가 내디뎌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새벽기도는 내 인생을 구조조정하는 작업의 출발점이다. 하루의 시작을 4시에 시작한다는 것도 의미가 있으며, 내 인생의 주인공을 나에서 하느님으로 돌려 세우는 작업이기에 더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힘들지만 갈 것이고, 가다가 지치면 쉬었다 갈지라도 끝까지 갈 것이다.

 예배당에 들어서니 캄캄하다. 아직 불이 켜지지 않았다. 옅은 불빛 사이로 40~50명의 신자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다. 나도 그 사이에 들어가 앉았다. 마침 불이 켜지고 목사님이 강단에 올라 서신다. 젊고 깔끔하다. 찬송가를 부르자고 하신다. 찬송가 몇 장이라고 하는데 잘 안들린다. 목사님이 부르시고, 신자들도 따라 부른다. 모르겠지만 듣기 좋다. 어설프게 따라 부르기보다는 귀기울여 들어보고 싶다.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니, 찬송가가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들어온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눈물이 쏟아진다. 안경을 벗었다. 찬송가가 끝날 때까지 울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눈물이 다시 흘러서 시야를 막는다. 눈물을 딱고 다시 글을 쓴다.
 목사님의 설교, 시편의 다윗이야기이다. 다윗도 하느님을 처해진 환경이 어렵고 힘들어지자 하느님을 의심하고 원망하지만, 결국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편 4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내 눈에는 4편이 안 보인다. 4장을 펼쳐 보니 아니다. 책을 덮고 말씀에 다시 귀를 기울였다. 하느님은 선과 악을 그 사람의 행위나 환경을 보고 판단하지 아니하시고, 오로지 믿음으로만 판단한다고 하신다. 하느님을 성경책에서 축복을 하실 때 많은 조건들을 내세웠지만, 시편에서 제사장축복을 할 때는 무조건적인 축복을 하셨다고 한다. '무조건적인 축복이라!!' 또한 내가 다른 사람을 축복한만큼 나 또한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님은 착한 분이라 아니라, 참 공평하신분이구나!'

 나는 지금까지 나의 판단으로 사람을 판단하며 살아왔다. 내가 처한 환경, 내가 알고 있는 지식, 내가 경험한 경험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선과 악을 구분했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더욱 그랬다. 부모님과 형제, 집사람과 아이들에 대해서 내가 가진 기준으로 판단하고, 미안해하고 미워하고 고마워하며 살아 왔다. 하지만, 그것이 하느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기도하며, 사랑하며, 축복하며 살아가는 일뿐, 나머지는 모두 하느님에게 맡기면 그뿐인 것을, 무엇을 그토록 힘들어 하고 안타까워하며 살아왔단 말인가?

 나의 모든 것을 하느님아버지께 맡깁니다. 뜻대로 쓰소서. 쓰임받은 대로 살아갈 수 있게 힘을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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